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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여행을 준비하며 - 작별의 순간이 다시 출발이 되는 이유

by birdi 2025. 12. 27.

여행을 마무리하며 천천히 걸었던 산책로, 나무 그늘 아래의 고요한 오후
도쿄 신주쿠 교엔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뒤에야 보이는 것들


여행이 끝났다는 걸 인정하고 나면, 이상하게도 여행에 대해 더 또렷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여행 중에는 그저 흘려보냈던 순간들이 하나씩 정리되어 떠오르고, 그때는 중요하지 않았던 장면들이 이제야 의미를 가진다. 급하게 찍은 사진 한 장,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던 벤치, 마지막 날 괜히 오래 머물렀던 장소까지도 모두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끝을 인정한다는 건 여행을 밀어내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여행을 제대로 바라보는 일에 가깝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는 감정이 현재에 머물러 흔들리지만, 끝났다고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여행은 기억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제야 우리는 여행을 있는 그대로 꺼내어 볼 수 있게 된다. 좋았던 순간도, 아쉬웠던 순간도 과장되지 않은 상태로 남는다.
그래서 여행의 끝은 항상 조금 늦게 온다. 마음이 충분히 머물렀다고 느낄 때, 더 이상 붙잡지 않아도 괜찮아졌을 때 비로소 끝난다. 그리고 그 끝을 받아들인 뒤에야, 우리는 이 여행이 나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다.

 

 

 

다음 여행은 이미 마음속에서 시작된다


여행을 정리하다 보면 문득 다음 여행을 떠올리게 된다.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도 괜찮다. 어디로 갈지, 언제 떠날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다시 떠나고 싶다는 감정만큼은 분명해진다. 이때의 다음 여행은 일정표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에 가깝다.
이전 여행에서 무엇이 좋았는지, 무엇이 오래 남았는지를 떠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여행의 모습도 그려진다. 빠듯한 일정 대신 여유를 남기고 싶다거나, 유명한 장소보다 조용한 순간을 더 담고 싶다는 생각처럼. 다음 여행은 이렇게, 끝난 여행이 남긴 감정 위에서 조용히 준비된다.
그래서 여행은 끝과 시작이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의 여행을 잘 끝낼수록, 다음 여행은 더 분명해진다. 서두르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이전의 기억을 발판 삼아 나만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작별의 순간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끝을 잘 맺었기 때문에, 다시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이 생긴다.

 

 

 

여행을 끝내는 방식이 다음 여행을 만든다


여행을 어떻게 끝내느냐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급하게 정리해 버린 여행은 기억 속에서도 서둘러 사라지고, 끝을 미루기만 한 여행은 일상 속에서 오래 흔들린다. 반대로 충분히 머물고, 천천히 작별한 여행은 오래도록 단단한 기억으로 남는다.
이 여행을 끝내며 알게 된 건, 여행의 진짜 가치는 이동이 아니라 정리라는 사실이다. 보고 온 것들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남겨진 감정을 받아들이는 일. 그 과정을 거쳐야만 여행은 경험이 되고, 경험은 다음 선택에 영향을 준다.
이 여행을 끝내고, 나는 다음 여행을 준비한다. 아직 목적지는 정해지지 않았고, 일정도 없다. 하지만 떠날 준비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전 여행에서 배운 속도와 마음을 기억한 채, 다시 새로운 작별의 순간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 여행은 끝나고, 동시에 이어진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이 여행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할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