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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의 순간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 – 여행이 남긴 한 장면들과 풍경의 여운

by birdi 2025. 12. 10.

세부의 겨울(크리스마스 쯤) 하늘은 파랗고, 날씨는 덥다. 공터 한 가운데 트리가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현지인의 설레는 마음이 느껴진다.
세부의 썸머 크리스마스

 

 

여행을 하다 보면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겠구나’ 하는 감각이 불쑥 찾아온다. 어떤 때는 완벽한 노을 때문이고, 어떤 때는 마주친 낯선 사람의 미소 때문이며, 또 어떤 때는 도시의 익숙해진 공기가 마지막으로 스며드는 순간 때문이기도 하다. 여행에서 만나는 순간들은 모두 일회적이다. 그래서 더 깊고, 더 오래 남는다. 이번 글은 여행 속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을 어떻게 마음에 접어두는지, 그리고 그 순간들이 떠난 뒤 어떤 잔향으로 남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스쳐 지나가지만 오래 남는 장면들의 힘


여행지에서 남는 순간들은 대부분 계획에 없던 것들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마음에 오래 머무는 장면들 말이다. 예기치 않게 들어간 골목에서 마주친 조용한 벽화, 창가에 앉아 있던 고양이의 느릿한 눈빛, 비를 피하려고 들어간 가게에서 들었던 낯선 음악,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이 당시의 감정과 함께 겹쳐지면서 하나의 기억 조각이 된다. 여행 감성 글과 같은 기록들이 사랑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여행자가 경험한 작은 순간이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도 촉촉하게 스며들기 때문이다. 여행 후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질 것 같지만 세밀한 장면들은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당시에는 아무 의미 없어 보였던 풍경이 지금 떠올리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이유는, 그 순간 속의 내가 그만큼 ‘진짜 나’였기 때문이다. 여행에서는 누구도 나를 규정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대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작은 장면 하나에도 감정이 쉽게 묻어나고, 그 감정이 훗날 ‘여행의 여운’으로 되살아난다. 다시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살짝 간질거리는 이유는, 그 순간이 나를 더 가볍고 따뜻하게 만들었던 장면이기 때문이다. 여행 후 감정은 결코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사소한 순간들이 도시의 잔향이 되어 오래 남는다. 그래서 여행자는 결국 순간을 담는 사람이 된다. 돌아오지 않을 장면을 조금 더 오래 붙잡고 싶은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라져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붙잡고 싶은 것들


여행에서 가장 애틋한 시간은 ‘마지막 하루’다. 그 도시의 공기를 마시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모든 감각을 민감하게 만든다. 아침부터 작은 장면들이 마음에 깊이 들어온다. 카페의 따뜻한 향, 숙소 앞 도로의 소음, 신호등이 바뀌는 리듬, 평소라면 지나쳤을 벤치에 앉아 잠시 머무는 선택까지. 사라져가는 시간은 여행자의 감정을 더욱 섬세하게 만든다. 떠나온 도시의 온도가 마음속에 남아 있을수록 여행의 여운은 길어진다. 여행 후 감정을 설명할 때 흔히 ‘텅 빈 마음’이라고 표현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빈 것이 아니라 ‘채워질 틈을 남겨둔 상태’에 가깝다. 사람은 사라짐 속에서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겼는지 알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 걷는 길은 첫날과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더 천천히 걷게 되고, 더 깊이 바라보게 되고, 더 많이 기억하려 한다. 도시의 잔향은 사실 마지막 하루에 농도가 가장 짙다. 그날 경험한 감정들이 훗날 불현듯 찾아와 마음을 적신다. 일상 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작은 이미지—주황빛이 번지던 하늘, 문을 열 때 났던 숙소 냄새, 밤거리를 비추던 가로등의 색—이런 조각들이 사라진 순간을 다시 불러오며, 여행에서의 작별을 조용히 꺼내 보여준다. 사람은 결국 떠나보내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붙잡고 싶어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여행은 그 두 가지 마음을 가장 부드럽게 경험하게 하는 시간이다.

 

 

돌아오지 않는 순간이 만들어주는 또 다른 나


사라진 순간들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여행이 끝난 뒤에도 마음은 여전히 여행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고, 내 안에 남은 장면들은 천천히 ‘변화’가 되어 흘러들어온다. 여행 후 감정이 길게 이어지는 이유는, 우리가 그 시간 속에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도시에서의 나는 일상보다 더 느리고, 더 편안하고, 더 열린 마음이었다. 그래서 돌아오지 않는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당시의 나와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여행이 남긴 잔향은 결국 도시의 것이 아니라 ‘여행 속에서 빛나던 나 자신의 모습’이다. 어떤 순간은 나를 위로했고, 어떤 순간은 나를 가볍게 만들었고, 또 어떤 순간은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아주 작게 알려주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사라진 순간이란 사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층위가 되어 남는 셈이다. 여행 감성 글을 읽는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여행은 실제로는 끝났지만 마음속에서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돌아오지 않는 순간들은 나를 더 부드럽게 만들고, 나를 더 이해하게 하고, 내가 어떤 세계를 사랑하는지 알려주는 작은 지도처럼 남는다. 그래서 여행자는 계속 떠난다. 돌아오지 않는 순간들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나를 다시 움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