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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의 순간들

마지막 인사에서 발견한 따뜻함 - 여행이 남긴 여운에 대하여

by birdi 2025. 12. 9.

LE FUMOIR 가게이름이 적혀있는 엽서이다. 엽서 안에는 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Le Fumoir, 식사를 마치고 받은 엽서 한 장

 

 

여행의 첫 인상보다 더 오래 남는 ‘마지막 인사’의 힘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낯설고 설레지만, 여행이 끝날 즈음에는 묘한 정리가 찾아온다. 그리고 그 마지막을 마무리해주는 건 장소가 아니라 사람일 때가 많다. 호텔 프런트 데스크 직원과 나누는 마지막 인사, 며칠 동안 같은 시간에 들렀던 카페에서 바리스타가 건네주는 짧은 작별의 말. 이런 순간들이 여행의 마침표를 얼마나 다르게 찍어주는지, 여행을 많이 다닐수록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나는 여행 중 머무르는 장소를 단순한 숙소나 카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곳은 며칠 동안 내가 반복해서 들르고 쉬고 회복하고 감정을 쌓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지키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도시에서 가장 친밀하게 마주하게 되는 존재가 된다. 하루에 몇 초라도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서로 시선을 한 번씩 스치며 같은 하루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 짧은 교류가 여행의 리듬이 되고, 그 리듬이 쌓여 여행 전체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래서 마지막 날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프런트 데스크로 내려갈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이 도시에서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실감이 든다. 침대를 정리하고, 방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이 공간과 인사를 나눈 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가장 먼저 마주하는 사람이 호텔 직원이다.

체크아웃을 부탁하면 직원은 언제나 비슷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그 미소에 담긴 의미는 매번 다르게 느껴진다. 여행을 편안하게 보냈는지, 피곤해 보이는지, 아쉬움이 남는지 직원은 순간적으로 표정을 읽고 가벼운 말을 덧붙인다. 여행은 즐거우셨나요 같은 짧은 문장들이 여행 전체를 감싸주며 마무리해준다.

카페도 마찬가지다. 사흘 연속으로 같은 카페를 찾으면 마지막 날쯤에는 바리스타가 나를 알아본다. 오늘이 마지막이죠 같은 가벼운 말이 여행의 끝을 아늑하게 만들어준다. 낯선 도시에서 누군가가 내 작별을 알아봐 준다는 사실, 이 도시에서 잠시라도 익숙한 존재가 되었었다는 느낌. 그 감정이 오래 남는다.

여행의 마지막 장면에는 그렇게 낯설지 않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마치 한 도시와 나 사이의 연결을 조용히 풀어내는 순간 같다. 그 실을 정리하는 역할을 해주는 건 언제나 한 사람의 따뜻한 인사였다.

 

익숙해질 만큼 짧고, 잊히지 않을 만큼 따뜻한 관계


여행 중 호텔 직원이나 카페 직원과 생기는 관계는 정말 독특하다. 이름도 모르고, 서로에게 깊은 관심을 둘 시간도 없고, 대화라고 해봐야 인사 몇 마디뿐이다. 그런데도 그 짧은 교류가 하루의 분위기를 바꾸고, 전체 여행의 감정을 결정짓는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계획 있으세요 같은 말들이 여행자의 마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여행을 자주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여행 중 호텔이나 카페는 일종의 안전지대가 된다. 모든 것이 낯설고 예민해진 도시에서 유일하게 반복되는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길은 낯설고, 언어는 다르고, 날씨조차 익숙하지 않다. 그러다 직원의 가벼운 배려 한마디를 들으면 긴장이 풀린다. 비가 올 것 같으니 우산 챙기세요, 오늘은 조금 추워요 같은 말이 작은 안심이 된다.

그런데 마지막 날이 되면 이 익숙함이 갑자기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동안 나를 알아봐 주던 바리스타도, 내가 묵는 방 번호를 외우고 있던 프런트 직원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작별의 인사는 유난히 감정의 밀도가 높다. 바리스타가 손을 흔들어주고, 프런트 직원이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해줄 때, 소소한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 같은 느낌이 든다.

이 관계가 오래 남는 이유는 시간보다 감정 때문이다. 머무는 동안 쌓인 친근함이 짧아서 더 선명하게 각인된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지만 깊게 새겨진 흔적. 더 알고 싶어도 알 수 없고, 다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관계는 완성된 형태로 기억 속에 남는다.

이 작별은 서로 부담이 없기 때문에 더 진심으로 느껴진다. 이해관계도 없고, 기대도 없고, 계산도 없다. 그저 여행자와 그 도시의 주민이 잠시 만났다가 따뜻한 마음을 남기고 헤어지는 관계. 그래서 떠난 뒤에도 불쑥 떠오른다. 그 직원은 지금도 그 자리에서 누구의 여행을 돕고 있을까, 그 카페는 여전히 같은 향기일까. 이런 생각들이 여행을 다녀온 뒤에도 한동안 마음속에서 이어지게 만든다.

익숙해질 만큼 짧고 잊히지 않을 만큼 따뜻하다. 이 절묘한 균형이 여행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관계다.

 

마지막 인사가 여행의 기억을 완성한다는 것에 대하여


여행을 떠올릴 때, 풍경이나 음식보다 사람과의 작은 순간이 더 오래 남는 경우가 많다. 호텔 직원이나 카페 직원과의 마지막 인사는 여행 전체를 마무리하는 장면이 된다. 마치 영화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잔잔한 음악처럼 여행의 마지막 분위기를 정리해주는 역할을 한다.

파리에서 머물던 어느 호텔에서 체크아웃하던 날, 프런트 직원이 캐리어를 문 밖까지 옮겨주며 다시 오면 꼭 들르세요. 당신은 언제나 환영이에요 라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 말은 길지 않았지만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따뜻하게 남았다. 말 자체보다 그 말이 가진 온기가 마음에 닿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도시가 나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를 받은 느낌이었다.

카페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사흘 동안 같은 커피를 주문하며 얼굴을 익혔던 바리스타가 마지막 날 나를 기억하고 오늘이 마지막 날 같다는 말을 건넸다. 작별을 누군가가 함께 확인해주는 듯한 그 순간, 여행의 끝이 조금 더 부드럽게 느껴졌다. 낯선 도시에서 아주 잠깐이라도 내가 누군가의 일상에 흔적으로 남았다는 사실이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우리가 이런 작은 순간을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마지막 인사가 여행과 나 사이의 관계를 정리해주는 의식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캐리어를 닫고 호텔을 떠나는 것으로는 마음이 정리되지 않지만, 누군가의 따뜻한 한마디가 있으면 여행 전체의 감정이 하나로 묶인다. 작별은 언제나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그 끝에 따뜻함이 더해지면 여행은 더 오래 아름답게 기억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이러한 순간들을 계속 기록할 것이다. 언젠가 오래 지난 여행을 떠올릴 때,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건 늘 그 마지막 인사의 온도였으니까.

 

 

2025.12.09 - [작별의 순간들] - 한 번만 만난 사람들 – 첫 번째 여행 감성 에세이